본문 바로가기

세계

푸틴과 우크라이나... 정치통합은 멀고 군사행동은 가깝다

우크라이나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가 공화국의 러시아 귀속을 16일 주민 찬반투표에 부치기로 하고 러시아가 이에 화답해 외국 영토의 러시아 연방 합병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4일 “크림반도를 합병할 뜻이 없다”면서도 “주민만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해 ‘민족자결’ 원칙에 따라 크림반도가 러시아와의 합병을 원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할지, 서방의 압박에 맞서 협상의 우위를 점하려는 포석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분명한 점은 푸틴은 크림반도 개입으로 국내 지지 기반을 확고히 하고, 건재함을 과시한 러시아의 ‘하드 파워’를 토대로 유라시아연합 추진을 더욱 공세적으로 펼칠 호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푸틴의 버팀목, 강한 러시아에 대한 향수


크림반도 군사 점거로 서방의 비난을 받는 것과 달리 푸틴은 국내적으로는 2년 만에 최고 수준의 지지를 받고 있다.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VTsIOM’이 러시아군의 크림반도 무혈점거가 시작된 지난 1~2일 조사한 결과 푸틴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67.8%에 달했다. 폭스 뉴스가 지난 2~4일 조사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38%를 기록해 2009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40%대 밑으로 떨어진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크림반도 점거와 소치 동계올림픽 특수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 크림반도의 러시아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비율도 71%를 기록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모스크바 센터의 분석가인 마샤 리프먼은 대다수의 러시아 국민은 우크라이나의 권력 교체를 러시아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서부 우크라이나의 파시스트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반란”으로 보고 있다며 “많은 러시아인들은 크림반도를 당연히 러시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 소련 땅이었다가 1954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가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이었던 우크라이나로 편입시킨 크림반도를 다시 돌려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푸틴의 지지도 상승은 그가 주창했던 ‘강한 러시아 부활’에 대한 공감 여론이 커졌음을 뜻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조사한 결과 다수 러시아인들은 러시아가 과거 소련과 같은 ‘제국’이 되길 바란다는 의견을 보였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2012년 봄에 조사했던 러시아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44%가 “러시아는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소련 붕괴 직후였던 1992년 37%에 비해 늘었다. 푸틴이 지난 2005년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재앙”으로 표현한 것과 비슷하게 “소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큰 불운이다”라고 응답한 사람들은 50%에 달했다. 


유라시아연합 창설에 박차 가하는 푸틴


우크라이나에서 노련하게 ‘하드 파워’를 행사한 푸틴이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수년째 출범에 공을 들이고 있는 ‘유라시아연합’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푸틴은 유라시아 통합을 본 궤도에 올리기 위한 시도로 5일 모스크바에서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관세동맹 협의기구 ‘최고 유라시아 경제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관세동맹 시장에도 부정적 여파가 미치고 있다”며 “기업인들과 수출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관세동맹의 핵심 경제 파트너인 우크라이나를 도와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은 실질적인 논의가 있었다기보다는 다분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양국에 통합 노력을 강조하는 선전적인 성격이 강했다.


2010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과 관세동맹을 체결한 푸틴은 2015년까지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출범시키고, 최종적으로 유럽연합(EU)과 비견할 만한 정치통합체로 유라시아연합을 창설해 소련 붕괴 이후 다시 유라시아 대륙의 맹주로 등극하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과거 소련권에서 경제규모 2위를 차지한 우크라이나의 참여는 옛 소련과 비교해 인구와 경제 면에서 뒤떨어져 ‘저칼로리 소비에트 유니온’으로 불리는 유라시아연합을 유럽연합에 대항할 만한 규모로 키우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참여한다면 그 시점은 유라시아연합의 전 단계인 유라시아경제공동체가 공식 출범하는 5월 1일이 최적기이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면에 푸틴의 시계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옛 구성국 민심 이반 변수


크림반도에서 보여준 강압적인 방식이 다른 옛 소련 구성국들을 유라시아경제공동체로 끌어들이는 데도 적용될 수 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는 키멥대학 중앙아시아센터 소장 나르기스 카센노바는 “(푸틴이) 훨씬 더 열정적으로 계획을 밀고 나가면서 잠재적 관세동맹 회원국들은 냉혹한 선택을 강요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대 그들’이라는 냉전시대의 논리가 다시 활개를 치면서 러시아의 정책은 좀 더 ‘직설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보여준 러시아의 패권적 태도가 주변국에 정치·경제 주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를 주면서 유라시아경제공동체 결성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카센노바는 “옛 소련 구성국들에 어떤 제국주의적 의도도 없다고 안심시키려 노력하는 대신, 러시아는 이들 국가를 완전한 주권을 갖고 있는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영토 불가침이라는 국제법적 원칙보다 자국의 이해를 우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은 자국 북부지방에 러시아계가 많이 거주하고 있어 크림반도의 러시아인 보호를 이유로 개입한 러시아의 태도에 특히 민감하다. 유라시아경제공동체 가입을 반대하는 활동을 해온 카자흐스탄 활동가 잔볼라 마마이는 “유라시아경제공동체는 새로운 형태로 소련이 부활한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의 반발 분위기에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자주권과 헌법을 위배하는 국제조직에서는 즉각 탈퇴하겠다”며 경제분야 협력만 하겠다고 밝혔다. 


키르기스스탄도 지난해 12월 유라시아경제공동체의 일방적 운영에 우려를 표하며 가입 협상을 중단시켰다. 키르기즈스탄은 러시아에 있는 자국 이주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대가로 팽창하는 중국과의 교역을 러시아로 돌려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도 국경 개방과 관세동맹을 넘어선 합병 수준의 통합에 대해서는 각각 12%와 16%로 지지 여론이 낮다. 


유라시아 전문 매체인 유라시아넷은 5일 “푸틴이 유라시아 통합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는 것은 크림반도를 군사적으로 점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유라시아연합


- 2011년 11월 푸틴 주도로 출범 동의 협정(2015년 정식 출범 목표)

- 회원국 :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회원국간 2010년 1월부터 관세동맹 출범)

- 정치적 통합에 앞선 경제적 통합 단계로 설정한 ‘유라시아경제공동체’ 출범은 올해 5월 1일 예정

- 가입 후보국 :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독립국가연합(CIS)


- 1991년 12월 출범

- 회원국 : 러시아 등 옛 소련 9개국(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 몰도바,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 비공식 참여국 : 우크라이나, 투르크메니스탄

- 탈퇴국 : 조지아(2008년 8월 러시아와 남오세티아 자치공화국 충돌 뒤 탈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