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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다국적 종자 기업들의 횡포, 자살씨앗 도입 논란

신석기시대 농업혁명 이후 인류는 씨앗을 뿌려 수확하고 좋은 것들을 추려 다음 농사에 써왔다. 씨앗을 저장하고 뿌리는 권리는 1만년 넘게 이어왔다. 모든 생명체는 후속 세대를 남긴다는 자연의 섭리에 맞는 당연한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 다국적 종자 기업들이 유전자 변형 기술로 창조한 ‘자살 씨앗’ 때문이다.


자손을 남기지 않는 ‘자살 씨앗’


브라질 의회는 자살 씨앗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종결자’(Terminator) 기술로도 불리는 ‘유전적인 사용 제한 기술’을 이용해 한 번 수확을 하면 자손을 남기지 않고 죽어버리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종자이다. 결과적으로 농부들은 매번 작물을 심을 때마다 새로 씨앗을 사야 한다. 


자살 씨앗이 도입되면 농부들의 자기 충족적인 작물 재배가 어려워지고 다국적 종자 및 화학기업에의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수백만명에 달하는 소농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인도, 중남미, 동남아시아의 소농과 원주민 모임,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제적인 반대운동을 벌였고, 2000년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자살 씨앗’의 사용 중단에 합의했다. 


다국적 종자 화학기업 몬산토는 2012년부터 가뭄에 잘 견디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옥수수를 시험 재배하고 있다. _ 몬산토 홈페이지


모라토리엄은 2006년 당사국 총회에서 한 차례 더욱 강한 어조로 개정됐다. 총회는 ‘유전적인 사용 제한 기술’에 관해 “적절한 과학적 자료가 정당화할 때까지 현장 시험과 상업적 사용을 허가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다국적 기업은 이후 유전자 사용 제한 기술을 씨앗의 번식능력을 허용하지만 유전자 변형 형질을 ‘끄는’ 형태로 바꿨다는 논리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들은 종결자 기술로 미국을 비롯해 유전자 변형 농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교배현상을 막을 수 있어 전통 농법을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모라토리엄 종결을 원하는 브라질 토지 소유자들도 종결자 기술이 유전자 변형 형질이 2대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해 안전하며 오직 비식용 작물에만 사용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자살 씨앗을 약품 제조나 유칼립투스 나무처럼 제지 생산에 사용되는 특정 식물의 통제된 재배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1만년간 이어져온 농부의 씨앗권에 사망선고를?


현재 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자살 씨앗 허용’ 법안은 크리스마스 휴정 전인 20일 표결 처리되지 않는다면 내년 2월 초까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인 기술감시단체인 ETC는 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친 종결자 법안’에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위원회 다수는 이 법에 우호적이라 어느 때든 이를 통과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환경단체들은 브라질 의회가 이 법을 통과시킬 경우 자살 씨앗의 모라토리엄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세계 각지에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12월 초 3만5000개의 개인·기관의 서명을 받아 항의서한을 의회에 제출했다. 환경단체 ‘상트로 에콜로지코’의 마리아 주제 구아젤리는 “법안이 통과되면 농부들은 더 이상 그들 스스로 씨앗을 생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농업산업의 최종 목적이다”라며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오는 크리스마스에 1만년간 이어져온 농부의 씨앗권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에 대해 축하할지 모른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기술감시단체인 ETC는 유전적 사용 제한 기술은 불완전하며 불임 형질이 이웃 식물 종으로 옮겨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다국적 종자기업들이 종결자 기술의 사용을 허가받으면 즉각 시장에서 일반 씨앗을 철수시키고 2~4배나 수익성이 높은 자살 씨앗만 남겨 종속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ETC의 팻 무니 사무총장은 “법안이 통과되면 브라질 정부는 2014년 한국에서 열리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193개국이 합의한 모라토리엄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브라질 의회 사민당 원내대표 에두아르도 시아라는 “유전자 사용 제한 기술은 장점이 있다. 법안은 오직 인류에 유용한 한에서만 이 기술의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전자 사용 제한 기술은 미 농무부와 다국적 종자·화학기업들에 의해 개발됐다. 몬산토, 듀퐁, 신젠타, 바이엘, 바스프, 다우가 세계 종자시장의 60% 이상을, 농화학시장의 76%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 모두는 종결자 씨앗 기술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제초제에만 내성을 갖게 해 종자뿐 아니라 농약도 자사 제품을 쓰도록 하는 패키지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몬산토의 대변인 톰 헬셔는 “어떤 기관에서도 소위 종결자 씨앗이 개발되고 있다고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몬산토는 1999년 종결자 기술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확고히 지키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연구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몬산토 홈페이지에는 이 공약이 오직 ‘식물 작물’에만 해당한다고 나와 있어 브라질이 추진하고 있는 나무와 의료용 작물은 종결자 기술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네팔에선 농부들 시위 직면


네팔에서는 유전자 변형 종자를 도입하는 정부에 맞서 농부들이 시위에 나섰다. 네팔 치트완 지역의 농부들은 18일 몬산토의 유전자 변형 옥수수 종자가 시장에 판매된다는 보도 이후 반대시위를 열었다. 2010년 네팔에서는 유전자 변형 옥수수 재배에 실패해 농부들의 항의시위가 크게 나자 정부가 몬산토의 옥수수 종자를 수입하려던 계획을 중단한 바 있다. 


네팔의 농부 리쉬 압하카리는 “몬산토는 농부들에게 더 나은 수입을 약속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토착 종자를 (유전자 변형 종자로) 대체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 ‘리퍼블리카’에 말했다. 압하카리는 네팔의 농민들이 몬산토의 시장 진입에 반대하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며 “비록 이런 다국적 기업들이 처음에는 하이브리드 종자를 나눠주지만 뒤에는 유전자 변형 종자를 심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환경단체들이 ‘자살 씨앗’ 허용 법안을 논의하는 의회 위원회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_ ETC 홈페이지


하이브리드 종자는 다른 성질의 씨앗을 교배시켜 만들어 두 씨앗의 유전자들을 통째로 이용하는 종자로, 한 생물체의 유전자 중 필요한 유전자만 분리해 다른 생물종에 옮겨 원하는 특성을 갖게 만든 유전자 변형 종자와 구분된다. 하이브리드 종자는 잡종 1대로 잡종강세라는 성질이 작용해 생육이 좋아지고 모양과 수확 시기가 일치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우량 성질은 다음 세대에 이어지지 않아 새로 씨앗을 구매해야 한다.

 

안전성 문제 제기한 논문 철회 압박 의혹 


몬산토는 유전자 변형 농작물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는 과학계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프랑스 캉대학교 생물학자인 세랄리니는 지난 11월 28일 몬산토의 유전자변형 옥수수 ‘NK603’과 제초제 ‘라운드업’의 잠재적 유해성을 연구한 논문이 철회됐다고 말했다. 몇 시간 후 지난해 9월 이 논문을 게제한 학술지 <식품화학독성학>을 발행하는 출판그룹 ‘엘제비어’는 “실험 동물의 수가 적어서 논문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부족했다”며 논문 철회 사실을 밝혔다. 


문제의 논문은 현재 생산·시판되는 ‘NK603’을 실험쥐들한테 2년 동안 먹이며 살펴보니 일반 옥수수를 먹고 자란 실험쥐들에 비해 종양과 간·신장 등의 장기 손상이 더 많이 발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NK603’은 2000~2011년까지 세계 21개국 정부가 식품으로 승인한 품목으로 한국 정부도 2002년 식용, 2004년 사료용으로 승인한 이후 꾸준히 수입해 왔다. 


세랄리니 연구진은 학술지 규정에 따르면 “논문 철회는 윤리위반이나 표절, 논문이 이미 발표된 경우나 사기 혹은 선의에 의한 오류로 연구를 신뢰할 수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며 자신들의 논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또 논문 철회에 외압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세랄리니는 몬산토에서 수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미국 네브라스카대학 교수가 된 리차드 굿맨이 올해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임명된 것을 근거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