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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터키 광산 붕괴 최소 238명 사망·120여명 매몰 ‘최악 참사’

무너진 탄광 안에서 시신이 실려 나왔다. 광부 가족들은 구조대원이 시신의 얼굴을 가린 천을 들출 때마다 발디딜 틈 없이 몰려들었다. 시신이 되어 나온 사람들 중 한 명은 15살 ‘소년 광부’ 케말 이을디즈였다. 소년의 삼촌은 도간통신에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다”며 침통해했다.

희생자 중 15세 소년도… 하청업체 미성년자 고용 가능성

터키 이스탄불에서 남쪽으로 250㎞ 떨어진 마니사주 소마 탄광에서 13일 오후 3시20분쯤 전기공급장치 폭발로 갱도가 무너져 최소 238명이 숨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광산 안에 120여명이 더 매몰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사고는 터키 정부의 탄광 민영화와 규제 완화, 비용을 줄이겠다며 업체가 무분별하게 추진한 하청구조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15살짜리 광부는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지만, 사망자 대부분이 하청업체 계약자들인 것으로 미뤄 광산 측이 신원도 확인하지 않은 채 미성년자까지 고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남쪽으로 250㎞ 떨어진 마니사주 소마 탄광에서 13일 오후 배전장치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화재와 갱도 붕괴로 숨진 광부의 시신을 구조팀이 실어나르고 있다. 사고 당시 탄광 안에서는 787명의 광부들이 작업 중이었으며,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 최소 200명에 달한다. 아직도 200~300명가량이 탄광 안에 갇혀 있지만 유독가스에 막혀 구조팀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사고는 터키에서 일어난 최악의 탄광 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마 _ EPA연합뉴스



광산 앞에서는 갇힌 광부들의 가족이 몰려들어 애타게 생환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사고는 1992년 흑해 연안의 종굴닥 탄광 사고 사망자 263명을 훨씬 뛰어넘는 터키 사상 최악의 탄광 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르도안 총리는 14일 사흘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집권당 안전법안 거부 2주 만에… 유독가스로 구조 난항


폭발은 탄광 입구로부터 2㎞ 떨어진 지점에서 일어났다. 당국은 광부들이 지하 2㎞, 탄광 입구에서 4㎞ 지점에 갇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구조대원과 인근 탄광 노동자 등 400명이 구조작업에 나섰지만 갱도 안에 산소를 집어넣는 것 외에는 진척을 보지 못했다. 매몰된 동생을 구하기 위해 주변 광산에서 달려온 한 노동자는 “150m 지점에서 유독가스에 막혀 들어갈 수 없었다”며 울먹였다.

터키에서는 1941년 이후 탄광 사고로 3000명 이상이 숨지고 10만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탄광노조는 오래전부터 정부가 탄광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회사가 노동자의 안전을 희생시키며 이윤을 챙긴다고 비판해왔다. 소마 탄광 소유주인 알리 구르칸은 2012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들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돈도 적게 받는 하청업체 계약자들을 고용한 덕분에 t당 130달러에 달했던 채굴 비용을 24달러까지 낮췄다”고 자화자찬한 바 있다. 

특히 하청업체 인력은 안전훈련도 받지 않은 채 투입되는 경우가 많은데도 당국의 관리감독은 없었다. 9개월 전 타네르 이을드즈 에너지장관이 소마 탄광을 방문했지만 업체의 높은 생산성만 칭찬했을 뿐이었다고 현지 일간 후리예트는 전했다. 노동사회안전부는 이 탄광이 지난 2년간 5차례 안전점검을 받았으며, 지난 3월 점검에서도 지적 사항이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출된 광부들은 “탄광에 안전장치가 없었으며 회사 감독관이 사고 직후 광부들을 산소가 부족한 잘못된 길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진보노동조합연맹의 카니 베코 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학살’이라 불렀고, 마데니스 세틴 위구르 전 광산노조 위원장은 “사상 최악의 산업살인”이라고 비난했다.


‘터키 광산 사고’ 6월 대선, 에르도안 정권 최대 위기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터키 마니사주 소마 지역의 탄광들에 대한 의회의 조사를 집권당이 막는 등 당국이 ‘부실관리’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6월 대선을 앞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가 궁지에 몰렸다. 



터키 일간 후리예트는 야당 의원 60명이 지난달 29일 소마 일대의 탄광을 조사하자는 결의안을 냈으나 소마 지역구의 의원을 비롯한 집권 정의개발당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14일 보도했다. 야당은 소마에서 지난해 5000건의 탄광 안전사고가 발생했으며, 미성년자를 고용하고 무리하게 초과근무를 시키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의개발당 소속인 마니사주 부지사 무자페르 유르타스는 의회 조사결의안을 무산시키기 위해 “소마 탄광은 터키 내에서 가장 안전하다” “직업 특성상 치명적인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안을 제출했던 외즈귀르 외젤 의원은 사고 뒤 “의회가 조사에 나설 필요성은 분명했다”고 말했다. 


수도 앙카라 등서 규탄 시위 


이번 사고는 다음달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출마를 노리는 에르도안 총리는 알바니아 방문을 취소하고 이날 사고현장을 찾았다. 에르도안은 “영국 역사를 보니 1838년에는 탄광 사고로 204명이 숨졌고 1866년에는 361명이 사망했더라”면서 100년도 더 지난 영국의 탄광 사고를 예로 들며 이번 사건을 설명, 빈축을 샀다. 


이스탄불에서는 탄광 사고를 방기한 정부와 광산회사 소마홀딩스를 비판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소마홀딩스 본사 건물을 에워싼 청년층 시위대는 “살인자”라고 외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수도 앙카라에서는 800여명이 에너지부 앞에서 행진을 하자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진압했다. 에르도안은 반민주적 여론통제와 부패 스캔들로 지난해부터 국민들의 반발을 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