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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1984 part 2 - 1984가 갖는 현재적 의미

 

1984가 갖는 현재적 의미

 

 

1984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체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반공소설인가? 아니면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 즉 인민 대중의 자각과 아래에서부터의 권력 쟁취를 희망하는 소설인가? 두 견해 모두 1984라는 현대적 고전이 갖는 영향력을 자기의 정치적 입장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의도의 산물이다. 두 견해를 종합했을 때 사실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1984는 모든 억압적 권력의 출현을 경계하고 이에 맞설 인류의 자각을 촉구하는 소설이다. 1984는 어떠한 체제이든 권력을 잡은 집단은 권력 유지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펼쳐가기 마련이고 그 과정은 감시와 통제에 기반함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권력 유지의 과정에서 지배계급은 역사와 사실의 왜곡을 시도하고[1] 저항에 대한 처벌과 협조에 대한 보상의 체계를 구축하고[2] 끊임없는 사회적 긴장을 초래하는 전쟁과 경쟁을 통해 체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대상을 지배집단이 아닌 다른 외부집단 혹은 종교적, 정치적, 인종적 소수자 집단이 되도록 만든다.[3] 권력 추구의 과정에 뒤따르는 이 같은 현상을 오늘날 한국 사회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적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주는 경고와 교훈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조지 오웰은 ‘negative utopia’의 세계를 무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다. 바로 그 당시에 존재하던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극단적 형태를 그려냄으로써 앞으로 나타날 지 모르는 감시와 통제에 기반한 지배체제의 등장을 경계한 것이다. 역사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한 언제나 지배체제의 영구화를 꾀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한 지배세력이 인간이성마저 말살시켜 자신의 영구지배를 꾀하는 극단적인 세계가 존재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지금의 과학 문명의 수준에 비추어보면 1984년에 묘사된 감시 장치는 유치하다고 할 정도이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고도의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을 가능성이 커진 만큼 이러한 움직임을 불가능하게 하는 인류의 정치적 각성이 있어왔다. 그러한 각성에 이 소설은 큰 기여를 했고 앞으로도 퇴행적 음모를 꾸미는 정치 세력을 경계하는 의식을 형성하는데 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1984는 또한 인류가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역사적 모순을 보여준다. 그 모순이란 모든 인류의 풍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력의 발전과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이성적 깨달음이 널리 퍼진 현 시기에 여전히 착취와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일컫는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근대의 계몽주의자들은 믿었다. 그들은 노예제와 전쟁 그리고 착취가 불필요한 풍요의 시대를 맞이 할 것이라고 희망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희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 지금 그러한 희망은 철저히 배반당한다. 전체 인류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고 영토 전쟁이 불필요할 만큼 기술적 발달이 주는 부의 크기가 커졌음에도 지구상에는 여전히 빈곤과 폭력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1984를 비롯한 반유토피아의 소설들은 모두 이 같은 역사적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Erich Fromm, 에리히 프롬의 후기, 316) 이러한 모순은 역사는 발전한다는 계몽주의의 믿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1984는 우리에게 역사란 발전도상에 있는 불가역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행동과 의식을 통해 나아가기도 후퇴하기도 하는 의식적 노력의 산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1.     소설이 묘사하는 것처럼 빅브라더가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     소설에서 설명하듯 지금까지의 역사는 계급 대립의 역사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가?

3.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

4.     이상은 아름답지만 현실화된 이상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았다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이상은 무엇이고 그것이 현실화된 이상이란 무엇인가? 그러한 적이 있었는가?

-       반공주의 소설로 1984를 선전하는 것은 공산주의라는 이상이 실현된 것이 소련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소련은 공산주의의 이념 실현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소설이 묘사하는 전체주의적 반 유토피아의 현실화에 가깝다. 유치한 이념 대립의 결과로 1984가 경고하는 억압적인 권력의 의미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 원래 지배계급에게도 피지배계급에게도 이념은 집권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모든 주의는 결국 권력 지향적이었다. 주의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그래서 자신의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야 한다.



[1] 무지는 힘, 즉 시민들이 자신을 계발할 경제적, 정신적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앰으로써, 그로부터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는 교육의 향상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생기는 무지는 부패한 지배세력의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2] 자유는 노예라는 말은 자유란 순응을 통한 보상으로 얻는 것이고 또한 그럼으로써 그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하는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반항의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처하게 되는 노예적 상황을 의미한다. 즉 지금의 관점에서 볼 때 경쟁의 논리를 내재화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3] 전쟁은 평화’, 즉 전쟁은 체제를 평화롭게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 개인적으로 여기서 경쟁은 평화라는 슬로건을 덧붙이고 싶다. 통제정부의 출현, 신나치 등의 파시즘의 등장과 사회의 모든 폭력적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If you’re happy inside yourself, why should you get excited about Big Brother and the Three-Year Plans and the Two Minutes Hate and all the rest of their bloody rot?,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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