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요건 완화, 초과근무 연장 등을 담은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9일 프랑스 전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동참하면서 100곳의 학교가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르 몽드의 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파리와 릴, 툴루즈, 리옹 등 프랑스 전역 150곳에서 노동법 반대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 추산으로 40~50만명, 내무부 추산으로 22만4000명이 집회에 참석했다. 보르도와 툴루즈에서는 비가 오는 와중에도 1만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모였다.
노동법 반대 시위 소식을 전한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의 10일자 신문 1면 캡쳐.
해고 요건 완화, 초과근무 연장 등을 담은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9일 프랑스 전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동참하면서 100곳의 학교가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르 몽드의 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파리와 릴, 툴루즈, 리옹 등 프랑스 전역 150곳에서 노동법 반대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 추산으로 40~50만명, 내무부 추산으로 22만4000명이 집회에 참석했다. 보르도와 툴루즈에서는 비가 오는 와중에도 1만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모였다.
이날 정오 무렵부터 파리 ‘공화국 광장’(la place de la Republique)에 모인 학생들은 “엘 코므리, 당신은 실패했다. 청년들이 거리에 나왔다”고 외쳤다. 이들 중 일부는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법학부 건물 앞에 모여 풍자적인 악령 퇴치 행위극을 벌였다. ‘일하고, 복종하고, 소비하라’라는 도발적 기원문으로 인기를 끈 배우 귀스포 알레상드로는 이 행위극에서 “우리에게 타인을 짓밟으라고 가르치는 성스런 경쟁에 감사한다”며 노동법 개정안을 비꼬았다.
법안에 반대하는 측은 정부가 친기업적 노동개혁을 추진하면서 고용 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어 프랑스에 근무하는 파트리샤 데샹은 뉴욕타임스에 “그들은 우리를 ‘클리넥스 노동자’로, 쓰고 버리는 노동자로 만들고 싶어 한다”며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취약한 사회 안정망은 (노동법이 개정된) 이후에는 훨씬 더 나빠질 것이다”고 말했다. 파리 시내 한 대학의 법학과 1학년생인 프랑수아는 르몽드에 “고용자에게 유리한, 완전히 불균형적인 법안”이라고 말했다.
EN DIRECT Loi Travail : pres de 500.000 manifestants dans les rues https://t.co/0pUdjSheKX pic.twitter.com/Ov8tHUAhHJ
— France Info (@franceinfo) March 9, 2016
올해 18살인 고등학생 알빈드는 “법안은 완전히 기만적이다”며 “우리는 내일의 노동자이며, 이 법안은 노동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전국학생연맹은 오는 17일 두 번째 반대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르 파리지앵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70%는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법 개정 온라인 반대 서명에는 현재까지 프랑스에서 진행된 온라인 서명 운동 중 가장 많은 수인 124만명이 참여했다.
#Republique, maintenant. #loitravailnonmerci
— Tess Raimbeau (@TessRaimbeau) March 9, 2016
Photo @MartinColombet pour @l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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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 어떻길래
프랑스의 실업률은 10%를 넘고, 실업자는 380만명에 달한다. 실업률을 낮추지 않으면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비롯해 마뉘엘 발스 총리, 엘 코므리 노동장관이 노동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실업 문제가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주요 원인을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주 35시간인 노동시간을 노사 합의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한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노동부 장관의 이름을 따 ‘엘 코므리 법’(loi El Khomri)으로도 불린다.
발스 총리는 이달 초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 고용을 꺼리면서 지난해 민간 부문의 신규 일자리 중 90%가 저임금 단기 계약직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은 ‘주 35시간 근로제’를 명시적으로 폐기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핵심 내용을 허물고 있다. 주 35시간을 초과해 일할지 기업별로 투표해 결정할 수 있으며 초과근무수당도 산별협약보다 낮게 책정할 수 있도록 했다. 예외적인 경우에는 직원들이 주당 60시간도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주 35시간 이상 근무가 현재보다 더 보편화하고 초과근로수당도 적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정규직에 해당하는 ‘무기한 정규 계약’(CDI) 직원의 고용 및 해고를 유연화하고 기업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해고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기업 활동의 증가로 일시적으로 업무량이 늘어날 때 노동자가 추가 근무를 거부할 경우 해고도 가능하다.
기존에는 직원을 해고하려면 고용주가 법원에서 경기침체 때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지만, 개정안에서는 기업의 수주가 감소하거나 새로운 경쟁이나 기술 변화에 직면했을 때, 영업이익이 감소했을 때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법 개정에 찬성하는 입장은?
기업인들은 정부의 노동법 개정을 지지하고 있다. 프랑스 중소기업협회장인 프랑수아 아셀린은 “노동자를 해고하길 원할 때 상당한 법적, 재정적 위험부담을 안게 된다”며 “프랑스에서 해고를 하려면 서류상으로 완벽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해고 남용’으로 기소된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들의 재량권이 해고를 둘러싼 노사 간의 분쟁에 불확실성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건 (재량권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다”며 “지금은 제한이 없기 때문에 때로 벌금이 너무 커서 고용주들을 위협한다. 이는 오늘날 고용을 꺼리게 된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이 경직된 노동 시장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입장은 찬반이 엇갈린다. 일단 숫적으로는 노동법 개정에 찬성하는 쪽이 우세해 보인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장 티롤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던 올리비에 블랑샤르 등 31명의 경제학자들은 이달 5일 르몽드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노동법 개정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프랑스의 노동자 보호 수준이 너무 높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이들과 함께 노동법 개정에 찬성 입장을 밝힌 콜레쥬 드 프랑스의 경제학 교수 필립 아기옹은 “해고 절차를 단순화해 끝없는 법적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며 “판사들의 재량권도 현재보다는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프랑스인 경제학 교수인 피에르 올리비에 그랑샤는 “정규직 노동에 대한 보호 수준을 높이면 취약 노동 계층 특히 젊은 층과 여성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많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단기 일자리를 강요하는 노동 시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들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경제학자들도 많다.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 피케티 등 22명의 파리경제대 교수들은 10일 프랑스의 실업이 (노동시장 경직성이라는)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기보다는 2011년 이후 정부의 재정 지출 감소와 결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정부 지출 감소가 수요와 성장 감소, 실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사회당 좌파 “우리가 해선 안 될 일이다” 반발
사회당 정부는 전국적인 반발 시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노동법 개정은 포기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이들은 법 개정이 청년 세대들에게 장기 고용의 문을 넓히고 단기 고용을 줄이는 방안이라고 설득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오전 각료회의 뒤 “프랑스는 사회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상황에 맞추기 위해 노동법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마뉘엘 발스 총리도 “노동법 개정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노동법 개혁으로 젊은이의 삶이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은 젊은이들이 가장 많은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당 내 우파로 분류되는 발스 총리 등이 노동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사회당 내 반발이 커지면서 내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 2000년 사회당 정부의 노동부 장관으로 ‘주 35시간 근로제’ 도입에 앞장선 마르틴 오브리 릴 시장은 법 개정에 반대하면서 사회당의 모든 당직에서 사임했다.
오브리 시장은 “자유방임의 친시장적 노동법 개혁은 프랑스 사회 계약을 배신하는 것”이라면서 “‘유연성’을 강조한 새 개정안으로 직업 안정성이 파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달 초 르몽드 인터뷰에서 노동법 개정은 “이런 것이어선 안 되고, 우리가 할 일도, 좌파가 할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애초 개정안을 9일 내각회의에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각계 반발이 커지자 의견 수렴을 위해 24일로 개정안 제출을 늦췄다. 그러나 사회당 좌파가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개정안이 통과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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